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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샵의 추천 매칭 : mbl+오디오 밸브 조회수 : 34324  

소리샵의 추천 매칭 : mbl+오디오 밸브

* 스피커 : mbl 300E
* 프리앰프 : Audio Valve Eklipse
* 파워 앰프 : Audio Valve Challenger 180
* CD 플레이어 : mbl 1531

시스템의 성격과 음반의 선정

독일 브랜드 MBL의 스피커와 CD 플레이어, 그리고 또 다른 독일의 신예 브랜드인 오디오 밸브의 진공관 프리·파워 앰프 시스템이 준비되었다는 편집부의 연락이 왔다. 우선 MBL은 무지향성이라고 하는, 흔치 않은 컨셉의 스피커로 각광을 받았다. 독일 제품이지만 미국에서도 인기가 높다. 필자가 처음 접해본 스피커의 모습은 솔직히 너무 기괴했다. 아무리 소리가 좋다고 해도 이렇게 생긴 괴물(?)을 눈앞에 놓고서 음악을 감상할 자신이 없었다. 반면 이번에 준비된 스피커는 그러한 무지향성의 디자인은 아니다. 고전적인 스타일, 어떻게 보면 약간 여윈 아발론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단, 스피터의 외장 마감은 하이테크적인 금속으로 마무리되어 있다. 트위터의 디자인 및 기술도 특이하다. 이러한 유형의 트위터는 약 20년 전에 인피니티 스피커를 사용할 때 접해 보았는데 당시 불행하게도 제대로 구사하는 데 실패했었다. 재미있는 점은 이번에 준비된 조합이 MBL의 원 브랜드 시스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프리·파위 앰프인 오디오 밸브도 역시 독일제라서 동질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MBL은 원 브랜드 시스템’이라는 상식에서 벗어난 느낌도 든다. 게다가 오디오 밸브는 진공관을 사용한다. 파워 앰프는 KT88(6550) 좌우 8개 푸시풀이다. 고정관념을 뛰어넘고 있으니 큰 성공 아니면 큰 낭패일 수도 있다.

박성수 씨의 사무실에 세팅된 시스템이 뿜어내는 소리는 대단했다. 이건 정말 물건이다. 유럽 군소 레이블에서 녹음한 쳄버 오케스트라의 바흐를 들어보았는데, 실제 악단이 눈앞에 있는 듯했다. 박성수 씨도 이 시스템의 잠재력을 모두 끌어내보기 위해 많은 공을 들인 모양이었다. 오디오도 사람 나름이다. 물론 일정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기기라면 박성수 씨 같은 이가 열 명이 붙어서 고민해도 답은 나오지 않으리라.


소리의 성격을 들여다보니 일단 음장감이 탁월하다. 음반 소프트에 기록된 앰비언스를 제대로 묘사한다. 고역이 탁월하기 때문일 것이다. MBL의 트위터가 그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한편 프리앰프와 파워 앰프가 진공관이라는 사실도 이러한 고역 재생에 많은 공헌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MBL 앰프를 사용한 원 브랜드 시스템에서도 이런 소리가 나올까? 박성수 씨의 말로는, 원 브랜드 시스템도 그 완성도가 탁월하지만, 시스템의 소리와는 성향이 다르다고 한다. 또한 디테일을 음악적으로 설득력 있게 묘사하는 대목도 매우 좋다. 이건 고역특성이 좋다는 것과는 다른 차원인데, 굳이 말하자면 과도특성이 좋아서 음이 뭉쳐지는 경우가 없다는 말이다. 재생기기를 통해 조형하는 음악에서 밸런스가 우수하다는 것은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에 몰두할 수 있도록 한다는 말과 같다.

그래서 이번 시청에서는 ‘오디오의 수준을 되묻는 소프트’라고 생각되는 소프트를 선정해보았다. 즉, 소프트의 정보량이나 녹음의 수준이 뛰어나기 때문에 웬만한 시스템으로는 제대로 소화하기 어려운 디스크들을 의미한다. 오디오의 수준을 되묻는다는 말은 원래 어떤 일본 평론가가 만들어낸 개념임을 밝혀둔다.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이번 시청의 성격을 표현하는데 가장 적절한 한마디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선정의 조건은 일단 (1)대규모 편성 관현악 및 오페라를 들어보고 이를 통해 시스템의 극한을 보고 싶었다. 다시 말해서 ‘소규모 편성의 음악이나 실내악에 적합하다’는, 다소 애매모호한, 칭찬인지 불평인지 모를 평가를 내놓고 싶지 않았다. 또한 (2) 오케스트라의 울림이나 콘서트홀의 앰비언스가 필자에게 익숙한 녹음을 선정했다. 그래서 비엔나 필하모닉, 런던 심포니,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등을 골라보았다. 대규모, 고품질 시스템은 ‘듣기 좋은 음’과 ‘올바른 음’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기계를 디자인한 엔지니어의 철학이 가미되어 수준도 높다는 말이 되겠지만 ‘토스카니니가 바비롤리로 들린다’면 그건 심한 왜곡일 수 있다. 마지막으로 (3)레퍼토리 자체가 본 시스템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제시해주는 녹음을 골라보았다. 기계의 특성과 레퍼토리의 개성이 일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음반 시청

우선 비엔나 필하모닉을 길버트 카플란이 지휘하는 말러 교향곡 제2번 ‘부활’을 시청해본다(DG 474 380). 카플란은 직업 지휘자가 아닌, 미국의 말러 광신자(?)로서, 이번 부활 교향곡 녹음이 이미 두 번째이다. 그는 미국 월가에서 활동하던, 소위 말해서 잘나가는 뱅커였고, 후에 ‘Institutional Investor’라는 저널을 창간, 경영했던 언론인이자 백만장자이다. 이 잡지는 1년 구독료가 900달러나 하는 고급 저널로서 금융산업의 내부소식, 탁월한 분석기사 등을 통해 성공한 잡지이다. 컨텐츠가 좋으면 잡지 1년 구독료를 100만원이나 받을 수 있다니. 특히 공짜 컨텐츠가 활개치는 인터넷 시대에 꿈같은 이야기다. <월간오디오>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평생 한 번이라도 ‘부활’ 교향곡을 직접 지휘해 보는 게 소원이었던 카플란은 숄티에게 간단히 지휘법을 사사한 바도 있고, 80년대 말에 미국 MCA 레이블을 통해 발표된 첫 녹음에서는 런던 심포니와 협연했는데, 엄청난 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이번에 DG에서는 비엔나 필하모닉과 연주하였는데, 쉽지 않은 매칭이었을 것이다. 미국사람들을 싫어하는 비엔나 사람들, 게다가 카플란은 유대인이다. 번스타인도 초반부에 비엔나에서 혹독하게 당했다. 그래서 연주에서도 그러한 어색함이 가끔 느껴진다. 그렇지만 대단한 연주와 녹음임에는 분명하다. 필자에게는 88년 런던 심포니 녹음이 더 나은 것 같다. 일단 이 녹음을 들으면 과거 비엔나 필하모닉이 ‘부활’ 교향곡 레코딩에서 보여주었던 문제점이 말끔히 해소되었다는 점에 호감이 간다. 오케스트라와 코러스가 모두 좁은 공간에 뭉쳐서 녹음을 해야 하기 때문에, 투티에서 소리가 거북해지는 경향이 보였다. 그로 인해서 대개 투티에서 디테일이 뭉개지거나(아바도의 DG 녹음), 반대로 공간감을 확보하기 위해 마이크를 멀리 두고 녹음하면 세부표현이 모호해지는(마젤의 소니 녹음) 현상이 생기는 것을 보아왔다. 이번 DG 녹음을 들어보니, 최근의 녹음 기술은 필자같이 소심한 청중들이 그런 쓸데없는 걱정을 이제 하지 않아도 되겠구나 하는 안심을 준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그 모든 변화를 매우 정확하고 면밀하게 제시하여 주는 것은 대단한 수준의 성과였다. 대규모 편성의 음악을 들을수록 시스템의 능력이 중요해진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큰북이 등장하는 투티에서도 이 시스템은 전혀 당황하는 기색이 없다. 비엔나 특유의 소노리티도 현란하기 이를 데 없다. 음반 녹음 데이터를 보니 DG의 에밀 베를리너 스튜디오 마스터링이라고 한다. 좋든 싫든 과거 DG의 레이블 사운드가 없어져 가는 건 아쉽지만 그 완성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최근 DG 녹음이 이토록 좋았던 기억은 없었는데, 혹시 기계와 소프트가 ‘독일적 시너지’를 내고 있는 것은 아닐지?

소리의 세련된 풍요로움을 보여준 매칭 시스템

박성수 | 오디오 평론가

mbl의 기기들을 대할 때마다 많은 필자들이 아쉬움을 표하는 대목이 하나 있다. 원 브랜드 매칭에서 그보다 더 뛰어날 수 없는, 세련미 넘치는 음향을 들려주지만, 막상 다른 회사의 기기와 조합하면 뭔가 부족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 바로 mbl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mbl 원 브랜드 시스템의 완성도가 그만큼 높다는 뜻도 되지만, 여러 메이커의 기기들을 바꿈질해 가면서 자신이 원하는 음향을 찾아가는 것을 큰 낙으로 삼는 애호가들의 오디오 현실과는 일정한 거리가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호주머니 사정이 넉넉하다면(아주 넉넉해야 하겠지만) mbl이 일러 주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는 것도 그리 나쁜 일도 아니고 손해 볼 일도 아니지만, 그처럼 꿈같은 일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애호가가 과연 몇이나 될까?

그리고 음향 자체의 시각으로 보면, mbl의 기기들을 가지고 언제나 동일한 스타일의 음향을 들어야 한다는 것 또한 그리 반가운 일은 아니다. 원 브랜드 시스템은 그 자체로서 선택의 폭을 좁히는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따라서 mbl이 추구하는 음향이야 애호가들의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으니, 이제는 mbl에서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자는 생각은 mbl의 미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물론 새로운 시스템이 mbl 수준의 음향에 육박하는 완성도를 갖추고 있어야 하고, mbl과 만나서 기존의 시각과 차원을 달리하는 새로운 음향을 이끌어 내기가 쉬운 일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던 중 기회가 찾아왔다. 오디오 전문점 소리숍의 협조로 기획된 이번 달의 ‘오디오 플러스 뮤직’에서 mbl을 중심으로 한 조합을 다루자는 의견을 본지 편집부에서 전해 온 것이다. mbl의 1531 플레이어와 300E 스피커가 이 시스템의 주포라는 편집장의 전화에 ‘그러면 앰프도 mbl입니까?’ 하는 질문을 던졌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는 뜻밖의 대답이 흘러나온다. 이름도 생소한 독일의 메이커 오디오 밸브의 진공관 앰프란다. 프리앰프의 이름은 이클립스이고, 파워 앰프는 챌린저 180이라는데 편집장이나 필자나 처음 듣기는 매일반이다.

이건 또 무슨 일이란 말인가? 원 브랜드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마음은 굴뚝같지만, 너무 생소한 메이커의 등장에 “이건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한국 시장에 생소한 녀석을 mbl 300E에 붙인다고? 300E라면 대형 플로어형 스피커인데, 여기에 진공관 앰프를? 이쯤 되고 보면 “그냥 mbl 앰프로 가면 안 되냐”고 사정이라도 할 판이다. 그러나 일은 이미 벌어졌고, 만만치 않은 덩치의 기기들이 필자의 시청실에 도착하고 말았다.
그러나 오디오 밸브의 앰프들을 처음 본 순간, 이만 하면 한 번 시도해 보아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두 기기 모두 속이 훤히 비치는 아크릴로 만든 섀시를 채용하고 있는데, 챌린저의 속에 6550(또는 KT88) 출력관 여섯 개가 두 줄로 당당하게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던 것이다. 서둘러 매뉴얼을 펼쳐 이 앰프의 이모저모를 살펴보는데, 흥미를 끄는 내용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리나라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이 앰프의 출력은 180W라고 한다. KT88 여섯 개라니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정작 놀랄 일은 따로 있다. A급 동작으로 180W라는 것이다.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수치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이 앰프에 사용할 수 있는 출력관의 종류였다. 스펙에 따르면 이 앰프는 KT88/6550 외에도 EL34까지 출력관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지면 관계상 상세한 설명을 다음 기회로 미루겠지만, 이 앰프의 이모저모를 찬찬히 살펴 가는 필자의 머릿속에서는 풍성한 음색과 저 밑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KT88과 극사실주의적 세련미를 자랑하는 mbl의 만남이 초래할 결과가 어렴풋하게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A클래스 앰프와의 만남이라고 하니 선율선에 실려야 음색의 순도도 꽤 높을 것 같았고, 음향의 텍스처와 다이내믹 또한 두터우면서도 잘 정돈된 모습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음향은 어떨까? 한 마디로 혼자 듣기 아까운 것이었다. mbl에서 이런 음향을 들을 수 있다니 정말 꿈같은 일이었다. 이 시스템은 mbl 특유의 음향, 그러니까 광활하면서도 투명한 음향 무대, 예리함과 화려함을 아우르는 세련된 선율선, 명쾌함과 냉철함을 아우르는 선연한 다이내믹 등을 아무런 손상 없이 그대로 제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기에 이클립스+챌린저 180 앰프 세트가 연출하는 중후하면서도 확산감이 뛰어난 저음역, 자연스럽게 봉긋하게 솟아오르면서 선율과 색채에 풍성한 표정을 실어 올리는 중음역, 잘 정돈된 음색으로 자연스럽게 최정상까지 도달하는 고음역 등이 기막히게 융합된 음향이 이 시스템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mbl과 오디오 밸브의 조합은 최고의 결과를 산출하는 상승효과의 전형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장쾌하고 광활하지만 어느 곳 하나 빈틈이 보이지 않고, 명쾌함과 섬세함이 공존하고 있으며, 투명함 속에서 풍성함이 살아있고, 풍성함 속에서 투명함이 떠오르고 있으며, 말끔하지만 그 속에 유연함이 녹아든 당당하면서도 집중력이 대단히 뛰어난 음향이 이 조합에서 살아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뛰어난 음향을 감상하는 재미라니! 튜닝을 진행하면서 접속 케이블 선정과 스피커 세팅 과정이 그리 쉽지는 않았지만, 그런 노력 끝에 필자가 얻은 음향은 어쩌면 음향의 선경(仙境)이 이런 것이라고 말해 주는 듯했다.


다음으로는 사이토 키넨 오케스트라/오자와의 브루크너 7번 교향곡(Philips 470 657) 녹음의 피날레 악장을 들어보았다. 사이토 키넨도 브루크너 밴드는 아니고 오자와도 브루크너 지휘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레코딩은 평론가들의 호평을 받았고, 실제로 들어보니 그게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 앨범은 CD/SACD 하이브리드 디스크여서 두 버전 모두를 비교해 들어보았다(SACD는 마란츠 SA-15S1을 언밸런스로 접속해서 시청). 필자로서는 섬세한 터치로 악상의 흐름을 표현하면서 세부적 조탁이 훌륭한 오자와의 능력은 인정하지만, 브루크너의 스케일 큰 조형미를 어떻게 능수능란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 회의적이었다. 그 단적인 사례가 오자와의 말러 연주였다. 아기자기하고 재미는 있지만, 말러의 그랜드 드라마를 유창하게 풀어내는 데 아쉬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브람스도 마찬가지였다. 달기는 하지만 뒷끝에 쌉쌀함이 없는 일본과자 같다면 너무 지나친 혹평일까?


그런데 이 디스크에는 그러한 의구심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연주가 담겨 있었다. 세부적 흐름과 구조적 흐름의 균형은 가히 최고의 수준이었다. 4악장 후반부 푸가 부분에는 독일 계통의 오케스트라들도 보여주지 못했던 묘미가 있다. 일본인들이 갖고 있는, 그 근원을 알 수없는 브루크너에 대한 심도깊은 이해에서 비롯된 연주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같은 쌀밥을 주식으로 하는 필자의 귀에 ‘일본 특유의 찰진 연주’가 매력 있게 들려오는 걸까?
SACD로 들어보니 해상도도 높아지고 공간감도 배가되면서 더욱 화려해진다. 이 맛에 SACD를 듣는다고도 한다. 필자의 경험상 마란츠 디지털 특유의 소리인 것도 같고, 프리·파워 앰프의 진공관 소자가 일정 부분 참견하는 것도 같다. 단 저음역에서 무게감이 좀 부족해지는 듯한데, 여기서 MBL의 원 브랜드 시스템으로 간다면 SACD가 더욱 훌륭한 결과를 내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을 들어본다. 1972년에 런던 심포니를 지휘한 번스타인의 연주인데(Sony CCK8277) 필자가 언제나 곁에 두고 재미있게 듣는 해석이다. 박성수 씨가 최근 번역 출간한 <레코딩의 역사>(Repeated Takes)에 ‘봄의 제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저 유명한 야만적인 화음도 오늘날의 연주에서 볼 수 있는 신랄한 해석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화음을 논리적인 구축물로 보기보다는 불협화음 음향의 의도적인 배치로 들었던 것이다.”
악상의 소란스러움이 의도적이었다면 번스타인만큼 이를 적극적으로 연주에 반영한 지휘자도 없으리라. 번스타인은 레코딩 당시에 런던 심포니와 서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사실 번스타인의 비트가 얼마나 즉흥적이고 작위적인가? 수차례의 녹음 세션을 마치고도 제대로 된 테이크가 없이 짜깁기를 해야 할 상황, 드디어 프로듀서가 항복하고는 “그만 합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요” 하면서 세션을 마치는 타협의 순간이 오고 말았다. 마음이 편해진 런던 심포니 단원들, 그리고 번스타인에게는 30여 분의 시간이 아직 남아있었던 것 아닌가. 여기서 번스타인은 말한다.
“시간이 남았으니 우리 한 번만 더 연주해봅시다. 쉬지 말고, 틀려도 좋고, 즐기고 노는 기분으로…”

그런데 그 연주가 전설이 되었다. “허리띠 풀고 술마시듯”이란 표현이라면 과장일 테지만, 그 순간적인 즉흥성은 몇 십 번을 들어도 필자를 흥분시키는 명연이 되었다.
디스크 데이터를 보니 DSD(Direct Stream Digital) 프로세싱을 거쳤다고 한다. 복각의 개성 때문인지는 모르나 번스타인의 개성보다는 런던 심포니의 울림이 더욱 부각되는 느낌이다. 얌전히 정돈되어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하긴 70년대 초반의 악명 높은 CBS보다는 나아야겠지. 한편 기계의 덕을 보는 순간은 1부 막바지에 들어 시작되는 투티. 야수적인 큰북 연타, 목관의 히스테리적인 고음역 연주, 금관의 포효 속에 처음으로 느끼는 ‘정돈된 혼란’으로 들린다. 오디오 시스템의 힘일까? 아니면 프로듀서의 의도적인 표현일까?

과거로 돌아가는 김에 확실하게 멀리 가보자고 선정한 음반은 푸치니의 ‘토스카’(EMI 62893 GROC). 칼라스, 디 스테파노, 고비 트리오에, 데 사바타가 지휘하는 라 스칼라, 그리고 프로듀서는 월터 레그. 가히 1953년 당시 최고의 프로젝트임에 분명하다. 이걸 ART 프로세싱으로 가다듬었다(EMI 리마스터링은 필자의 지난호 글을 참조하시길). 음악에 맞는 오디오를 선택하는가, 아니면 오디오에 맞추어 음악을 선택하는가? 물론 전자가 옳다는 것은 음악 애호가, 오디오파일 모두에게 당연시되지만, 정작 현실에서 실천에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이 ‘삼천포’로 빠지기도 한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필자가 던지는 두 가지의 질문.
첫째, 이런 명연주를 오래된 모노녹음이라고 소화할 줄 모른다면 그게 무슨 좋은 오디오입니까?
둘째, 기술특성 좋은 오디오 갖고 계시다고 맨날 텔락(Telarc) 샘플러만 들으실래요?
필자의 말이 격해졌지만, 이는 시공을 초월하는 이 앨범의 가치를 강조하기 위함임을 이해해주십사 한다. 스케일도 크고, 녹음도 훌륭하고,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수준의 연주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프로듀서 말대로 휘두르며 완벽을 추구하는 레코딩의 비즈니스 모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노녹음이라고 주저하지 마시길. 이 정도 수준의 오디오 시스템으로 들어보면 스피커 사이에서 스테레오 이미지 나오고, 가수들 위치 보이고, 가수들 목소리 손에 잡히는 느낌도 든다. 그리고 마리아! 아 마리아! 오랫만에 그녀의 전성기 목소리를 다시 접해본다. 그리고 제대로 된 시스템으로 들어본 건 더욱 오래전인 것 같다. 칼라스가 당대 최고의 벨칸토 가수이자 전설로 인정받고 있는 이유는 그녀만의 목소리가 갖고 있는 ‘적극적인 뉘앙스’ 때문이었다. 강조해야 할 음표나 단어가 있었던 자리에서 독특한 음색을 구사하고, 음표에 장식표를 붙이며 오리지널 음조에서 반음 정도 조절하는 그 능력이다. 필자가 놀라웠던 대목은, 이 오디오 시스템이 그걸 잡아내서 표현해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고역이 어떻고, 진공관이 어쩌고, 트위터가 뭐시기고, 이런 모든 설명을 초월하는 순간임에 분명하다.

그렇다면 이제 오디오에 소프트를 맞추어 보아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최근 각광을 받은 라티 오케스트라/벤스케 지휘의 시벨리우스 관현악집을 꺼내보았다(BIS 1445). ‘대양의 여신’을 제외한 모든 수록곡이 세계 최초 녹음이다. 게다가 모든 수록 작품의 독점적 연주/녹음권을 라티 오케스트라가 갖고 있다고 한다. 벤스케는 시벨리우스 스페셜리스트로 이미 정평이 나있는 지휘자이다. 과거에 카라얀은 한 인터뷰에서 시벨리우스와 브루크너의 유사함을 언급한 바 있다. 물론 그 스케일이나 관현악의 사이즈에서는 유사하겠지만, 그 무게감에서는 정반대일 것이다. 쉽게 말해서, 두 작곡가의 작품이 그림이라면, 두 작곡가 모두 커다란 팔레트가 필요한 사람들이지만 브루크너는 유화를 그렸고, 시벨리우스는 수채화를 그렸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벨리우스의 음악을 제대로 소화하는데 필요한 덕목은 무엇인가? 필자가 몇 가지 꼽아보자면, 우선 파스텔톤의 음색을 그려낼 줄 알아야 하고, 부양력 있는 사뿐한 선율이 필요한 동시에 실내악적인 온화한 울림도 있어야 하고, 확산감이 좋은 다이내믹도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포근한 멜로디를 감각적인 선율미로 그려내는 풍부한 소노리티도 필요하겠고, 공간감도 꼭 필요하겠지. 그런데 이렇게 나열하다보니 결국 이 시스템의 개성과 일치하고 말았다. 연주도 좋고 녹음도 훌륭하다. 게다가 오디오가 이를 잘 알고 표현해주니, 정말 삼위일체이다.

의문(?)의 디스크도 한 장 들어보았다. 무소르그스키의 작품을 스토코프스키가 편곡한 관현악집인데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너센이 연주했다(DG 457 646). 필자의 의문은 왜 1995년에 녹음한 레코딩을 2004년이 되어서야 출반했는가 하는 점이다. 흔한 기획의 디스크도 아니고, 연주도 좋은데 말이다. 그래서 필자의 추측은, 1990년대 중반에 DG가 좋은 기획으로 녹음했지만 음향적으로 ‘망친 녹음’이 되어버리자 끙끙 고민하다가 2000년대 들어와 리마스터링 기술이 많이 발전하니까 재도전해서 발표한 것이 아닌가 한다. 어짜피 스토코프스키의 편곡이 스트링을 전면에 내세운 ‘과장의 극치’인데, 손좀 보았다고 나빠질 일 없겠지. 그래서 듣기는 좋은데 이건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오리지널 사운드와는 거리가 멀었다. 결과물은 나쁘지 않다. 수려하고, 다이내믹 낙폭 확실하고, 무엇보다도 재미있다. 그렇지만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가 자신의 세브란스 홀에서 이런 소리를 만든다고 하면 조지 셸이 까무러칠게 분명하다. 이 시스템은 참 별 생각이 다들 게 하는 묘한 능력이 있다.

마지막으로 비엔나 필하모닉/칼 뵘의 모차르트 교향곡 40번과 41번을 들어보았다. 특별히 시스템에 도전할 능력이 있는 ‘강력한’ 소프트는 아니지만, 좋은 시스템을 만난 김에 필자는 비엔나 사운드에 한번 오랜만에 흠뻑 젖어보고 싶었다. 칼 뵘의 모차르트는 필자와 같은 중년 이상의 고전음악 애호가들에게는 일용의 양식이었다. 만일 필자의 인생을 영화화한다면 꼭 사운드트랙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목관과 스트링의 절묘한 앙상블을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필자의 기억에 오리지널 레코딩에서는 약간 ‘뭉개는’ 느낌의 음색이 존재했는데 그게 여기서 들리지 않는 것이 희한하다. 이 시스템으로 듣는 칼 뵘의 모차르트 연주는, 그 적극적인 이탈감의 표현이 뵘의 현대성을 엿볼수 있게 해 준다. 사실 그는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전문 연주자 아니었던가. 아르농쿠르와 뵙의 연관성을 말하는 서구의 평론가들이 있는데, 그게 무슨 말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레이블 사운드의 본래 의도, 지휘자의 의도, 그리고 디지털화가 되면서 달라지는 레이블 사운드의 변화까지도 읽어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이 시스템이 좀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정도의 소리를 내어주는 시스템이라면…

시스템의 수준을 되묻는 소프트의 도전에서, 소프트가 시스템의 한계나 약점을 증명하지 못했다면, 결국 시스템의 승리인 셈인가? 그렇게 누가 이기고 지는 것을 판정하는 것이 오디오의 궁극적 목적은 아니다. 서로 윈-윈이 되어야 하는 것이 순리이다. 1953년 녹음과 2004년의 녹음을 모두 출중하게 막힘없이 소화한다는 차원에서 이 시스템을 ‘50년의 시공을 뛰어넘는 시스템’이라고 감히 극찬해본다. 필자처럼 신예 연주자의 최신 연주와 과거의 명연 사이를 심하게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귀중한 시사점을 주는 시스템임에 분명하다. 한편 오디오적으로 보자면, 최신 원 브랜드 시스템에 진공관이라는 과거 기술을 매칭시켜 매우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냈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나중에 박성수 씨가 말해주는데 이번 시스템의 재미있는 특징은 필자나 편집장이 한 번 자리잡고 시스템 앞에 앉으면 아무 소리 안 하고 음악만 듣고 있다는 사실이었다고 말한다. 생각해보니 필자도 웬만하면 적어도 한 악장이 끝날 때까지 멍하니 앉아서 음악감상을 했었던 같다. 평론가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지만 청취자로 하여금 기계를 잊고 음악만을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 좋은 오디오의 본질이 아닐까. 이 시스템을 접하고 필자의 마음은 복잡해졌다. “이 정도의 소리를 내어주는 시스템이라면…” 하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는 독자의 상상에 맡기겠다.

 

월간 오디오&홈시어터 2005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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