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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cro + Wilson Audio + Mark Levinson의 매칭 조회수 : 22976  


소리샘의 추천 매칭
Halcro + Wilson Audio + Mark Levinson

◇ 스피커 : 윌슨 오디오 System 7
◇ 프리앰프 : 핼크로 dm8
◇ 파워 앰프 : 핼크로 dm38
◇ CD 플레이어 : No. 390SL


◈ 아메리칸 사운드를 찾아가는 긴 여정

글·허영호 | 음반 평론가


이 칼럼도 어느새 세 번째가 되었다. 오래전에 해외 메이저 레이블의 국내 제작 라이센스 음반의 해설지도 써보고 음반 리뷰도 수도 없이 해보았지만, 이렇게 음반과 오디오를 함께 놓고 글을 써나가는 건 정말 재미있다. 사실 힘들기도 하다. 예전에 음반 리뷰할 때 용감하게도 오디오의 요소까지 고려한 평가를 해본 적도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꽤 무모했었다는 느낌이다. 이 칼럼을 진행하면서, 옛날에 필자의 오디오 시스템으로 들은 음반을 해석이나 연주 이외에 ‘소리’라는 관점에서 이렇다 저렇다 이야기했다는 게 얼마나 대담하고 용감한 일이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오디오와 음반 소프트와의 관계와 상성을 설명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옛날 아날로그 팬들은 카트리지 하나를 바꾸면 소장하고 있는 음반 컬렉션이 모두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새 음반으로 보인다는 말을 많이 했다. 디지털 음반의 시대로 들어서서 그런 건 좀 덜하겠지만, 그래도 기계가 바뀌면 소리가 바뀐다. 그래서 오디오파일들이 조심해야 하는 점은, 주관이 뚜렷하지 않으면 이래저래 시간적 경제적 손해가 많다는 사실이다. 필자는 아이러니하게도 소프트에 대한 관심이 크면 클수록 오디오를 더욱 즐길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오디오는 소프트의 새로운 면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고, 이에 대한 개개인의 기준과 철학이 있다면 무작정 방황하는 오디오파일의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걸 절실하게 느낀 바 있다.

이번에 소리샘과 코포산업이 제공한 오디오 시스템은 윌슨 오디오 스피커, 핼크로 프리·파워 앰프, 그리고 마크 레빈슨 CD 플레이어이다. 필자는 우선 이 시스템의 소리가 필자가 (개인적인 영역에서) 즐기는 소리와는 정반대의 성향이라는 걸 밝혀둔다. 윌슨 오디오의 워트 퍼피는 필자에게 그림의 떡 같은 스피커이다. 오래전 미국에서 살 때 한 번 들어봤는데 정말 다이내믹 하나는 대단하다는 느낌이었을 뿐, 그리 크게 인상에 남지는 않았다. 게다가 제대로 구동하려면 프론트에 들어가는 투자도 만만치 않다는 것은 상식이다. 내가 소장하고 있는 음반 소프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 넣는다’하는 점에서는 물론 인정하겠지만, 여러 가지로 필자의 성향과 엇갈린다는 느낌이 강했다.

핼크로 앰프는 사람들이 하도 좋다고 하기에 외국 잡지에 소개된 비평을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있다. 아직도 오디오 시스템에는 진공관이 어딘가에 들어가야 소리가 제대로 나온다는 편견을 갖고 있는 필자에게 아직 디지털 증폭, 혹은 스위칭 전원 플랫폼의 소리는 낯설기만 하다. 제프 롤랜드의 최신 시스템에는 스위칭 전원이 사용된다고 하는데, 들어보니 필자가 동경하던 옛날 제프 롤랜드 소리는 이미 아니다. 스위칭 전원을 제대로만 사용한다면 나쁘진 않다고 느낀다. 실제로 필자의 구닥다리 시스템에서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스튜더의 D730 CD 플레이어는 스위칭 전원을 사용하고 있다. 마크 레빈슨이야 필자로서는 큰 불만이 없는 소리다. 결국 필자가 이번 달 시스템을 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과제는 우선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기대반 걱정반으로 박성수 씨의 시청실에 세팅된 시스템을 대했다. 붉은색의 스피커가 참 개성 있다. 이건 참 묘한 기분이 드는 분위기의 붉은색이다. 핼크로 앰프도 위세가 당당하다. 소형 공기청정기 크기이다. 디지털 증폭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기계를, 특히 프리앰프를 조작하기도 만만치 않다. 전원 스위치가 앰프 하단부 쪽에 있어서 박성수 씨 말마따나 전원을 넣을 때마다 앰프에 무릎 꿇고 절을 해야 한다. 얼핏 보니 이번 시스템에 들어간 케이블의 가격만 따져도 웬만한 중급 시스템은 명함도 못 내밀 듯하다.

아메리칸 사운드! 이 시스템의 소리는 15년 전쯤엔가 미국의 어떤 초 하이엔드 오디오 샵에서 들어본 바로 그 소리였다. 그 당시 약 30평쯤 되는 시청실에서 대형 냉장고 만한 스피커(미라지)로 들었던 그 소리이다. 어떤 브랜드의 앰프였는지도 기억나지 않고, CD 플레이어도 무엇이었는지 모르겠지만, 필자가 당시에 귀동냥해보고 그냥 정신이 멍했던 그 소리였다. 필자는 그 이후 이걸 아메리칸 사운드라고 개념 지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음반 소프트에 담긴 내용으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어’ 보겠다는 게 아니라 연주회장을 그대로 감상실에다 ‘옮겨’ 주겠다는 것이다. 일본 평론가의 말마따나 ‘트랜듀서’(tranducer)로서의 오디오인 셈이다. 이는 유럽의 오디오 문화가 지향하는 것과는 그 근본부터 다르다. 실연 콘서트가 아직도 음악 커뮤니케이션의 주류인 반면 주거공간이 상대적으로 작을 수밖에 없는 유럽에서 오디오의 덕목은 ‘얼마만큼의 설득력이 있는가’이다. 쉽게 말해서, 얼마나 콘서트홀의 분위기를 잘 전달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전달하느냐가 오디오의 성향과 수준을 결정짓는 기준인 것이다. 반면에 미국은 실연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청중들이 많은데다가, 주거공간이 매우 넓다. 당연히 오디오가 해야 할 일이 다른 것이다. 이걸 쉽게 말하면 ‘나는 그곳(콘서트홀)에 갈 수 없으니 그곳을 옮겨 주세요’인 셈이다.

가장 쉽게 유럽과 미국의 사운드를 구별할 수 있는 대역은 저음역이다. 통상적인 의미의 오디오 저음의 완성도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울리는가, 혹은 주어진 주파수 대역에서 얼마나 설득력 있게 ‘연출’하는가에 있다. 그런데 미국 시스템, 특히 윌슨 오디오 같은 극한의 시스템에서 보여주는 것은 실제 연주공간에서 저음이 어떻게 들리는가인 셈인 것이다. 특히 저음역 표현의 한계를 보정하면서 음악을 연출해주는 BBC 계열의 모니터를 현재 애용하고 있는 필자로서는 윌슨 오디오가 만들어내는, 아니 ‘옮겨내놓는’ 저음이 충격이었다.


누가 중후장대한 음향의 진수를 보았다 하는가?


박성수 | 오디오 평론가

지난해 이맘때부터 본지 필진에 다시 참여하여 근 1년 동안 하이엔드 매칭 코너를 담당하면서 다양한 대형 기기들을 접해 보았지만, 이만한 수준의 하이엔드 시스템 풀 세트를 필자의 작업실에 옮겨 놓고 직접 시청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나 이번 시청이 한층 흥미로웠던 것은 마크 레빈슨, 핼크로, 윌슨 오디오 등으로 구성된 호화 시스템을 접했다는 점 때문만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중견 수입업체인 코포산업과 오디오 전문점 ‘소리샘’에서 트랜스페어런트의 레퍼런스 케이블 풀 세트를 지원함으로써, 명실상부한 풀 시스템을 구성할 수 있었다는 데 더 큰 무게를 두고 싶다. 이 자리를 빌려 이들 업체에 심심한 사의를 표하고 싶다.

이번에 시청한 마크 레빈슨의 No.390SL 플레이어, 핼크로의 dm8 프리앰프, dm38 파워 앰프, 윌슨 오디오의 와트/퍼피 시스템 7 등으로 구성된 시스템에서 와트/퍼피의 이모저모에 대해서는 작년 8월호의 하이엔드 매칭 코너에 필자가 쓴 글로 미루겠지만, 마크 레빈슨의 플레이어 또한 필자에게 그리 낯선 것은 아니었다. 본지의 애독자라면 기억하겠지만, 꽤 오래 전 필자가 본지에서 활동하던 시절 마크 레빈슨의 기기들에 대한 글을 적지 않게 썼던 것이 사실이고, No.390SL 또한 당시 필자가 자주 접했던 플레이어였던 것이다.

이렇게 보면 이 시스템에서 가장 눈이 가는 것은 핼크로의 앰프 세트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그 명성에 대해서는 익히 듣고 있었지만 dm8 프리앰프와 dm38 파워 앰프는 필자 또한 처음 대하는 기기들이었다. 엄청난 크기의 방열판을 두 개의 기둥으로 세워 놓고 그 사이에 전원부와 회로부를 분리하여 수납한 독특한 디자인으로 되어 있는 dm38 파워 앰프는 동사가 내 놓고 있는 모노블록 파워 앰프인 dm58과 dm68 등의 하위 스테레오 버전이다. 그러나 스펙을 살펴보면 dm58은 채널당 180W라는 그리 높지 않은 출력 수치를 보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와트/퍼피 7을 구동하기에는 파워 앰프의 출력이 다소 낮지 않은가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시청 과정에서 그러한 문제점은 전혀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이 시스템이 연출하는 중후 장대한 음향을 대하면서, 세계 최고의 파워 서플라이 제작 기술을 가지고 있다는 이 회사의 광고가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스위칭 전원을 사용한 앰프 특유의 밝은 음색을 전면에 부각하면서, 이 앰프가 보여 주는 선명함·정교함·투명함·폭발력 등은 우리 시대가 지향하는 새로운 음향 패러다임의 실체를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었다. 어떤 국면에서도 안정성과 활력을 잃지 않고 음향 그 자체의 표정을 명쾌하게, 장쾌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투사하는 음향이 바로 그것이다.

이 시스템의 음향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독특한 음향 투사 방식이었다. 윌슨 오디오의 맥스 II와 X1 그랜드슬램 등에 대한 글에서도 밝힌 바 있지만, 와트/퍼피를 주축으로 한 이 시스템에서도 윌슨 오디오가 독자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자연스러운 장대함’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이 시스템이 제시하는 장대한 저음역에서 살아나고 있었다. 일반 스피커들이 보여 주는 팽팽한 저음역, 그러니까 한정된 용적과 강도가 덜한 소재를 채용한 인클로저, 그리고 절제력·안정성·폭발력을 겸비한 초저음역을 투사하지 못하는 우퍼에서 강력한 저음역을 이끌어 내기 위하여 음향을 인위적으로 압축하여 투사하는 방식과는 시각과 차원을 달리하는, 자연 음향에 가까운 중량감과 확산감을 연출하는 저음역이 이 시스템에서 살아나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이 시스템은 이처럼 강력한 저음역과 광대역 재생 능력의 투명한 통합 속에서 떠오르는 광활한 음향 무대 속을 시원스럽게 활주하는 새로운 스타일의 아메리칸 사운드를 제시하는 것처럼 보였다. 광활한 음향 무대 속에 화사함과 투명함이 살아 숨쉬는 선명한 음향이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대형 시스템이 흔히 보여 주는 덜 정돈된 음향 조형을 벗어던진 질서와 조화를 겸비한 새로운 차원의 장쾌함이라고 할 만했다.

이를 위하여 튜닝 과정에서 필자는 트랜스페어런트의 레퍼런스 밸런스 케이블을 비롯하여, 최소한 세 종의 언밸런스 케이블을 활용하여, 다소 과도한 경향을 보이는 고음역의 화려함을 줄이고, 존재감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 중음역에 명쾌함과 응집력을 실어 올리는 데 주력했고, 이 과정에서 그 나름의 주장이 분명한 최소한 네 가지 음향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밸런스 접속에서는 음향의 적극적 표현력이 향상되면서 투명도·명도·채도 등이 높아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고, 언밸런스 접속에서는 스케일이 다소 작아지지만, 접속하는 케이블의 특성에 따라 선율의 유연성·다이내믹·음색 등에서 상당한 변화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 나름의 개성이 뚜렷한 이들 음향에서 어느 한 가지를 고르기는 쉽지 않았다. 교차 시청을 통하여 허영호 씨와 김현석 씨, 그리고 필자 세 사람이 수긍하는 음향을 찾아냈지만, 이들 음향은 이 시스템이 애호가들이 제기하는 다양한 요구에 부응하는 잠재력을 갖추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어느 경우이든 이 시스템에서 가장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공연장에서 들을 수 있는 자연 음향에 근접하는 음향을 여유 있게 소화해 내는 장대함 그 자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거칠 것 없이 저음이 흘러나오지만 감상자를 윽박지르지 않으면서 광대무변한 음향 이미지를 독자적으로 제시할 줄 아는 능력! 그것을 가리켜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하이엔드 음향이라고 부르는 것이리라.


텔락과 잭 레너
그럼 이번엔 무슨 소프트를 들어봐야 하나? 나는 주저 없이 ‘이번엔 텔락(Telarc)을 듣자’고 결정했다. 내가 지난달 글에서 ‘기계 좋다고 맨날 텔락 샘플러만 들을 거냐’고 건방진 말을 한 바 있다. 좀 심하게 표현했다고 후회도 했지만 이번 시스템에는 텔락만큼 잘 어울리는 소프트를 찾기 어려울 것 같았다. 변덕스럽다고 욕먹어도 할 말은 없지만, 사실 텔락 디스크들은 내가 미국에 살 때 열심히 모았던 소프트이다. 텔락은 철저히 오디오 엔지니어의 음악적 철학을 기반으로 설립된 레이블이고, 그 핵심에는 레코드 엔지니어 잭 레너(Jack Renner)라는 인물이 있다. 그래서 잭 레너가 프로듀스한 몇몇 중요한 디스크들을 미국 현대음악 전문 레이블 뉴월드(New World) 카탈로그에서 찾아보았다. 한편 그중에서도 필자가 오래전부터 익숙한 소프트, 그리고 그동안 여러 다양한 시스템으로 들어본 소프트를 선정했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소개되는 앨범이 80년대 중반, 혹은 그 이전에 녹음된 연주들이다. 어찌 보면 미국의 한 군소 레이블(당시에) 이미 그 당시에 주어진 테크놀러지의 한계 속에서도 지금의 수준 이상의 완성도를 이루고 있다는, 다소 도전적인 명제를 증명해보겠다는 욕심도 생겼다.

프로듀서 혹은 레코딩 엔지니어를 말할때 언제나 유럽이 중심이 된다. 데카의 존 컬쇼, EMI의 월터 레그, DG의 귄터 브레스트 등이 있고 근대에 들어서면 필립스의 볼커 슈트라우스, 빌헬름 헤르베그 등이 있다. 레코딩 엔지니어로 유명한 인물은 케네스 윌킨슨 등이다. 다음에 지면을 통해 더 자세하게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된다. 한편 미국에는 머큐리 리빙 프레즌스의 C 로버트 파인, RCA 리빙 스테레오의 루이스 레이톤(라이너 지휘의 시카고 교향악단 녹음으로 유명) 등이 있는데, 이들도 어찌 보면 미국의 특이한 음반 문화를 대변했다기보다는 유럽 프로듀서 및 엔지니어들과 그 출발점이 같다고 보면 된다. 한편 미국 CBS 콜럼비아 계통의 프로듀서 및 엔지니어들은 미국의 음반문화를 어느 정도 대변하는 독특함이 있지만, 하우스 사운드가 워낙 부실해서 크게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앤드류 카즈딘, 폴 마이어스 등의 인물들이 이에 속한다. 그리고 리차드 게르하르트라는 인물이 있는데, RCA에서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미국 리더스 다이제스트 카탈로그 대부분을 담당한 인물이다. 이 사람에 대해 필자가 무척 할 말이 많다. 이 또한 다음 기회로 미루어야 할 듯.

이러한 배경에서 디지털 레코딩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미국의 개성, 즉 아메리칸 사운드를, 마치 러시아 음악에 차이코프스키가 그랬던 것처럼, 세계적인 각광을 받는 한 계보로 단숨에 올려놓은 레코딩 엔지니어가 바로 잭 레너이다. 현재 텔락 레이블의 회장겸 수석 레코딩 엔지니어로서 지난 20여 년간 30여 개 이상의 그래미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아마도 이러한 수상경력은 퀸시 존스 정도가 갖고 있지 않을까 싶다. 그는 미국 오하이오 주 클리블랜드 출신으로 음악원에서 정규교육을 받은 트럼펫 주자이다. 같은 클리블랜드 출신의 또다른 뮤지션 로버트 우즈(현재 텔락의 사장)와 함께 1977년에 텔락 레이블을 창설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셰필드 랩을 필두로 direct-to-disc(마스터 테이프를 사용하지 않고 연주를 직접 디스크로 커팅하는 방식의 녹음)가 오디오파일 매체로서 전성기를 구사하고 있었는데 텔락도 마찬가지였다. 우즈와 레너는 당시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던 자신들의 음악원 동기들을 통해 로린 마젤을 설득해서 당시 메이저 오케스트라로서는 처음으로, 소위 ‘오디오파일’ 음반 프로젝트에 참여시켰다. 그래서 발표된 텔락의 첫 앨범은 ‘Direct from Cleveland’였는데 1977년 발표되고 커다란 관심을 끌게 되었다. 필자도 한때 소장하던 디스크인데, 그 엄청난 다이내믹과 선명도는 인상적이었다.

그후 디지털 녹음기술이 상용화되자 텔락은 재빠르게 이를 수용해서 1978년에 클리블랜드 관악주자들의 홀스트 관악조곡 모음집을 녹음했는데, 이는 미국 최초의 관현악 디지털 녹음이라고 한다(세계 최초의 관현악 디지털 녹음은 일본의 데논). 한편 이 디스크를 미국 각지의 오디오 숍들이 데모 디스크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러한 다이내믹 레인지를 소화해본 적이 없는 당대의 스피커들을 여럿 날려버렸다는 거짓말 같은 전설이 시작되었다. 급기야 텔락에서는 음반 커버에 ‘이 음반의 다이내믹 레인지 때문에 야기될 수 있는 오디오 시스템의 고장에는 책임지지 않는다’라는 문구를 넣기 시작했다. 텔락의 레코딩이 기가 막히게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자 미국 여기저기에서 유명 뮤지션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아틀란타 교향악단의 로버트 쇼와 스트라빈스키의 ‘불새’를 녹음했는데, 이는 유럽의 데카 레이블이 처음으로 발표한 디지털 녹음이었던 1979년 비엔나 신년음악회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출시되었다. 같은해 말에는 텔락 레이블 최초의 베스트셀러가 된 로린 마젤 지휘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연주의 무소르그스키 ‘전시회의 그림’을 발표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현재 카탈로그의 질적, 양적 모든 면으로 세계적인 음반 레이블로 인정받는 메이저의 반열에 들게 된 것이다. 이러한 텔락의 성공에는 물론 레코딩 엔지니어 잭 레너가 존재한다. 그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유럽의 음악 전통과 거리가 먼 미국의 독립적 자생 엔지니어’라고나 할까.

텔락 사운드, 정확히 말해서 잭 레너 사운드의 특성은 거의 이번 오디오 시스템의 특성과 일치하고 있다. 일단 대역의 리스폰스가 평탄한데 이를 ‘중립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착색이 거의 없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반면, 무미건조하지 않다. 이는 음악연주에서 일어나는 직접음과 간접음의 밸런스를 가감 없이 녹음에 담아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무대를 그려내는 정위감과 공간감이 탁월한데 이는 심플한 마이크 세팅, 그리고 리마스터링 과정에서의 보정을 극소화하는 어프로치를 취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엔지니어 잭 레너 본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텔락 사운드의 목표는 시간과 공간의 관계로 만들어내는 악음을 있는 그대로 재창조하는 것이다.”
로린 마젤은 텔락이 레코딩한 자신의 연주를 들어보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연주할 때 청중이 바로 내 뒤에 위치해서 들을 수 있었으면 하는 소리를 잭 레너가 만들어 내고 있다.”
텔락의 사운드가 뮤지션들에게 많은 화젯거리가 된 것을 어찌보면 당연하다. 대부분의 메이저 아티스트들이 유럽의 메이저 레이블들과 레코딩 계약을 맺고 있으면서도 텔락 레이블에서 많은 명작을 남겼다. 루돌프 세르킨은 오자와/보스톤 교향악단과 협연으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전집을 녹음했고, 도흐나니는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와 함께 베토벤 교향곡 전집, 찰스 맥케라스 경은 프라하 실내관현악단과 모차르트 교향곡 전집을 녹음했다. 앙드레 프레빈은 비엔나 필하모닉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관현악 전집을 녹음한 바 있다.



모니터링에도 효과적인 능력을 발휘했다


김현석 | 레코딩 엔지니어

같은 대상을 두고도 서로 다른 사진을 찍어내는 사진가들과 마찬가지로, 필자와 같은 녹음 엔지니어 또한 실제연주라는 객관적인 대상에 대해서 사람마다 판이한 종류의 사운드를 음반에 담아내게 된다. 결국 우리가 듣는 모든 음반 속에 구현된 사운드는 실제 연주와 그 공간에 대해서 녹음 엔지니어가 주관적으로 경험된 소리를 기준으로 만들어낸, 소리의 사진과 같은 것이다. 이런 이유로 뛰어난 녹음 엔지니어가 된다는 것은 경험된 사운드의 폭이 넓고, 만들어낸 사운드의 기준이 확실하며 더 설득력 있는 보편성을 가질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이런 설명이 이 오디오 시스템을 설명하는 데 왜 필요할까? 평론가 박성수 씨의 시청실에 잘 차려진 초호화 캐스팅의 오디오 멤버들이 만들어내는 소리가 직업적인 관점에서 필자의 약점을 건드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마크 레빈슨과 핼크로의 프리·파워 앰프에 트랜스페어런트 스피커 케이블과 윌슨 오디오의 시스템 7이라는 조합은 그 이름만으로도 대충 어떤 사운드가 나올지 가늠할 수 있겠지만, 테스트에 들어간 음반이 필자가 직접 녹음, 편집, 믹싱, 마스터링의 음반제작 과정과 실제연주를 모두 경험한 것이기에 더 객관적인(필자의 관점에서) 비교가 가능했기 때문에 조금은 다른 성격의 리뷰가 가능할 것이라고 판단한 월간오디오 편집부의 요청에 따라 다 풀어내지 못한 시험지를 제출하러 가는 학생처럼 무거운 발걸음으로 시청에 임했다.

이번 테스트에 사용한 음반은 필자가 직접 녹음한 것이고, 시중에 시판되는 것이 아닌 CD 마스터이다. 여하튼 마스터 CD의 특성을 고려하여 1개의 밸런스드 케이블과 3개의 언밸런스드 케이블을 바꾸어 가며 테스트에 임했는데 정보량에 따른 음색과 타이밍의 차이들이 있었지만 대세를 바꿀 만한 것은 못되었다. 윌슨 오디오 System 7의 전작인 System 5 같은 경우는 미국의 스카이워커 스튜디오에서도 오랜 기간 영화의 서라운드 작업을 위해 사용했을 만큼 탁월한 공간 구현능력을 자랑했다.

또한 나는 시스템 5의 소리를 선호했던 편인데, 다소 무른 소리였던 전작에 비해 이번 시청에 사용된 시스템 7은 이전에 비해 다이내믹의 측면에서 더 진일보한 소리를 구사하고 있으며, 강한 에너지를 뽑아내고 있어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공간 구현에서 심도의 정확한 표현에서는 내가 녹음한 음반의 약점을 여지없이 까발렸는데, 시청에 사용된 유한빈의 바이올린 음반을 녹음할 당시 피아노가 위치에 따른 음색 변화가 있어서 바이올린 주자와 피아노 연주자의 거리를 평소보다 좀더 거리를 두고 녹음하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연주자가 원했던 개별적인 독립성은 확보했으나, 원근감에서 밸런스가 잘 맞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필자가 녹음과 마스터링에서 모니터링에 사용한 시스템에서는 그렇게 큰 차이로 느껴지지 않았는데 오늘 시청하는 시스템에서 들어보니 여실히 부족함이 들어나는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엔지니어들이 스테레오 사운드를 녹음의 출발선에 두고 시작하기 때문에 공간의 구현에 대해 수평적인 입체와 정위감에는 익숙하지만 종축이 되는 심도에 대한 부분은 소홀(하지만 박봉에 시달리는 엔지니어 중에서 과연 몇이나 시스템 7과 같은 고가의 스피커로 작업할 수 있겠는가?)하기 마련인데, 이를 필자 또한 그 무리 중의 하나구나 라는 점을 여실히 느끼게 해준 경험이 됐다.

두 번째로 시청한 서울 기타 콰르텟의 음반은 현대곡을 중심으로 레퍼토리가 선정되었고, 4중주의 특성을 살리고자 했으므로 더 오디오적인 레코딩을 진행했는데, 전체에 메인 스테레오 마이킹과 각각의 기타에 액센트를 주어 개개인의 음색과 전체적인 입체감을 살리는 데 주력했다. 먼저 시청한 유한빈의 음반에 비해 오히려 필자가 사용한 모니터링보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보여주었는데 기타가 가진 양감과 소리의 직선성을 극명하게 드러낼 뿐만 아니라 네 대의 기타가 만들어내는 입체적인 사운드와 일체감은 일찍이 작업과정을 통해서 느끼지 못했던 쾌감을 일게 만들었다. 감각적이고 색채가 중심이 된 곡들이 많다 보니 농밀한 음의 배분에 대한 체크가 쉽지 않아 아쉽지만 필자가 알고 있는 연주자와 그 공간에 근접한 소리를 이 시스템에 와서야 제대로 구성됐다고 생각한다.

서두에 밝힌 바와 같이 오디오를 하나의 기계로 바라볼 때 엔지니어들이 저마다 자신들의 주관적인 기준을 가지고 소리에 접근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기기들은 굉장히 한정적이다. 그것은 대개 서로 다른 두 가지 이유 때문인데, 첫째는 엔지니어가 자신이 바라본 소리를 여러 가지 다른 시스템에서 구현할 소비자를 생각해 만들어 낼 때는, 그 사용되는 기계들이 되도록 무색의 성향을 가진 백지와 같은 것이어야 일반 소비자의 다양한 개성 있는 재생환경에서 보편성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본질적인 이유가 있고, 둘째로는 시장을 선도하는 유명 녹음 엔지니어들에 의해 검증된 제품에 대한 확신과 상업적인 의미에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마케팅 능력을 공유하자는 이유 때문이다(예를 들면 텔락에서 레코딩 모니터 시스템을 음반 크레딧에 기재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도 전자와 같은 성격을 표방하는 기기들이 많이 있지만 정작 엔지니어들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말하는 사실에 가까운 소리라는 것에 대한 접근 방식이 출발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시장과 프로시장에서 성공한 ATC와 같은 메이커가 굳이 제품군을 분리하는 이유도 그것에 기인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 구성된 시스템을 통해 전해 받은 느낌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들 시스템은 엔지니어에게도 상당히 매력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제품들의 구성이라는 점이다. 특히 핼크로의 프리·파워 앰프에 대한 스테레오파일지의 명성을 윌슨 오디오 시스템 7 스피커를 구동해 보면서 귀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고, 내심 음반의 제작과정에서(특히 마스터링) 이 시스템 구성으로 모니터링을 해볼 수 있다면, 더 많은 면에서 점검과 필자가 가진 한계를 발견하고 되씹어보는 기회가 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음반 시청
일단 유진 올먼디의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연주의 생상 교향곡 ‘오르간’을 들어보았다 (80051). 필자가 CD를 듣기로 마음먹고 처음으로 구입한 음반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초기 텔락 앨범이다. 당시 미국에서는 텔락 레이블이 전국적인 유통망을 갖고 있지 못했던 상황이라 동네 오디오 숍에서 구입했던 기억인데, 필자로서는 시스템이 바뀌면 꼭 한 번씩은 들어보는 디스크이다. 1980년 필라델피아 성 프란시스 교회에서 녹음했는데 다른 오르간 교향곡 레코딩과는 달리 오케스트라 연주와 오르간 연주를 실제로 함께 연주한 것을 녹음했다. 올먼디의 해석 자체는 논쟁의 소지가 많고 이 작품을 잘 아는 분들께서는 의아해할 부분도 많은 연주이다. 게다가 좁 답답하다고 느껴졌던 연주였는데 이번 시스템으로 들어보니 의외였다. 필라델피아 사운드가 이토록 사뿐하고 산뜻했던가? 이 디스크에서 첼로의 멜로디를 이토록 선명하게 들어본 기억이 없다. 목관의 앙상블도 필라델피아의 본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현의 볼륨감이 더해졌다면 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그건 소프트,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욕심이 지나친 것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만큼 욕심이 나게 시스템이 울려준다. 2악장 후반부 오르간 총주는 실로 압권. 중급 시스템, 소형 스피커에서는 절대로 들을 수, 아니 ‘느낄 수’ 없는, 필자에게는 상당히 생경한 저음이다. 전혀 압축되지 않는 실제의 저음이다. 20년 전 명동성당의 한 오르가니스트 독주회에서 들었던 프랑크 작품의 연주가 생각났다.

뒤를 이어 모차르트의 ‘교향곡 제25번’을 들어보았다. 찰스 맥케라스 경 지휘에 프라하 실내악단 연주(80165)로 1987년 녹음이다. 잭 레너의 유럽 원정 데뷔 프로젝트였다. 정격연주와 현대연주방식을 적적하게 섞어 구성한 앙상블의 연주이다. 제1바이올린과 제2바이올린을 좌우로 나누어 스트링의 수채화적인 상큼함을 묘사했다. 이는 특히 25번 같은 모차르트 중기 교향곡 연주와 잘 어울리는 듯. 한편 스트링 연주에는 비브라토를 쓰지 않는다. 그리고 프라하 예술인의 전당 홀의 아름다운 소노리티도 놓칠 수 없는 매력이다. 오디오적으로 들어보니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저음의 파장’이다. 실내악단이니 기껏해야 통주저음 콘트라베이스 주자는 한 명 뿐이었을 텐데 어쩌면 이토록 막힘없이 저음의 울림을 뿜어낼 수 있을까? 한편 고음역은 물방울이 튕기듯 영롱하다. 영어로는 ‘dazzling’하다고 해야 하나? 유럽의 한 소규모 실내악단이 미국 중서부 출신 엔지니어 덕분에 국제적인 앙상블로 인정받는 순간이다. 유럽 레코딩 엔지니어들이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소리만들기의 통념을 깨어 버리는 통쾌함이 있다.

분위기를 바꾸어서 멜 토메(Mel Torme)의 재즈 앨범 ‘The Great American Songbook’을 골라본다(83328). 잭 레너는 80년대를 넘어 90년대를 맞이하면서 미국 재즈 아티스트들의 라이브를 연주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뉴욕의 한 극장식당에서 1992년 라이브로 녹음되었다. 멜 토메는 이미 전성기를 지난 가수이고, 심지어는 전성기에도 프랭크 시나트라, 토니 베넷의 그늘에서 고생했던 가수지만, 시나트라나 베넷이 그려내지 못하는 짙은 페이소스를 그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어 필자가 매우 좋아하는 가수이다. 술에 취하면 가끔 듣는 ‘I concentrate on You’를 들어보았다. 마치 가수가 내 앞에 서서 노래하는 듯한 실제감, 오른쪽 스피커 저 멀리 바깥에서 들리는 관객의 수근거림. 그리고 콘트라베이스의 애잔한 피치카토 연주. 한마디로 ‘와우!’ 빠른 템포의 곡을 들어보니 스윙감이 제대로 나온다. 이건 모두 기계 덕분이다.

다음으로는 잭 레너가 녹음한 뉴월드(New World) 레이블의 디스크를 두 장 들어보았다. 뉴월드는 미국의 전문 레이블로서 미국의 일류 오케스트라, 뮤지션들이 미국의 현대음악을 소개하기 위해 만든 레이블이다. 대부분의 참여인력은 이름값에 걸맞지 않은 작은 개런티로 프로젝트에 참여하는데, 잭 레너도 이 레이블을 통해 작지 않은 분량의 녹음을 발표했다. 필자가 매우 아끼는 앨범인 로렘의 관현악집부터 (NW353). 아틀란타 교향악단의 연주로 1987년에 녹음했는데 미국 음반비평가들로부터 ‘불멸의 음반’에 꼽힐 정도로 연주가 탁월하다. 스트링 교향곡 전곡을 들었다. 과거 존 컬쇼가 브리튼의 작품집에서 보여주었던 것 이후로 이토록 스트링의 다양한 모습과 표정을 자유자재로 들려준 녹음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이 들려주는 저음현의 질감은 기가 막힐 정도이다. 3악장 스케르초 도입부에서 확산감은 최고의 아날로그 플레이어 시스템에서도 들을까 말까 하는 수준이다. 요사이 디지털 녹음에서 스트링의 질감이 경시되는 게 필자로서는 정말 불만이다.

이번엔 윌리엄 슈먼/레오나르드 블라다의 교향곡집(NW348). 피츠버그 교향악단을 로린 마젤이 지휘했다. 마젤은 피츠버그 대학을 다니면서 오케스트라에서 바이올린 주자 및 객원 지휘자로 활동한 바 있고, 이 음악을 녹음할 때 음악감독이었다.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겐, 익숙하지 않지만 윌리암 슈먼(줄리어드 음악원장을 지낸 미국 작곡가)의 7번 교향곡에서 들을 수 있는 미국식 다성음악, 즉 푸가의 화려함은 매우 인상적이다. 한편 블라다의 ‘철강’교향곡에서는 한 덩어리의 쇠가 아름다운 산업예술작품으로 승화하는 과정을 음악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하는데, 사진으로 소개되는 앨범 커버를 참고하시길. 음악이 이해되지 않더라도 이 시스템으로 들어봐야 하는 건 브라스의 포효. 텔락의 첫 앨범도 관악연주집이었고, 잭 레너의 전공이 트럼펫이었으니, 그 소리가 훌륭하다는 건 어찌보면 당연한 사실이겠다.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도흐나니 지휘의 슈베르트 9번 교향곡은 (8011)은 1985년 녹음이다. 조지 셀의 CBS 녹음, 로린 마젤의 데카녹음으로 듣는 클리블랜드의 소리를 레퍼런스로 생각했다면 이 음반에서 들려주는 클리블랜드의 소노리티는 충격이다. 하지만 클리블랜드가 고향이고 세브란스홀의 오리지널 소노리티를 들어왔던 잭 레너의 귀에 클리블랜드의 소리가 어떻게 들리는가는 실로 궁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도흐나나의 연주는 기대 이상으로 출중하다. 웬만하면 녹음 도중에 짜집기(엔지니어 용어로 splicing)를 하지 않고 ‘one take’를 고집하는 도흐나나의 즉흥성 덕분이기도 하다. 이 시스템으로 들어보니 이 앨범에서 그동안 들어보지 못했던 다이내믹이 들린다. 20여 년 전에 녹음한 연주라고는 느낄 수가 없다. 이러한 느낌은 레오나드 슬래트킨의 말러 1번 교향곡(82004) 녹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 제대로 볼륨을 올려보자는 생각에 4악장을 최고 볼륨으로 들어본다. 세인트루이스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직접 본 경험이 있는 필자가 느끼기에, 이건 실제 연주의 다이내믹이고 소노리티이다.

마지막으로 앙드레 프레빈 지휘, 비엔나 필하모닉 연주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짜라투스트라’(80167)을 들어보았다. 프레빈은 텔락에서 슈트라우스 교향시 전곡을 녹음했는데, 많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명반 중의 명반이라고 평가하고 싶다. 비엔나 필하모닉의 연주는 다양한 레이블을 통해 소개되고 있지만 필자는 단연코 잭 레너가 가장 원음에 가깝게 잡아내었다고 단언한다. 연주를 녹음한 무지크페라인잘의 소리와 비엔나 필하모닉의 소리, 그리고 그 균형을 이토록 세밀하게, 또한 적극적으로, 그리고 성실하게 잡아낸 프로듀서는 아직 없었다. DG의 초컬릿 맛, 데카의 목욕탕 사운드를 비엔나의 소리라고 생각하신다면 오해일 것이다. 한편 이렇게 감상문 쓰는 듯한 평가를 넘어서 조금 분석적으로 탐구해보기로 했다. 마침 저명한 음향학자 게이드(Gade)의 87년 저서 ‘Concert & Opera Halls’에서 비엔나 무지크페라인잘의 음향특성을 분석해놓은 데이타를 찾아냈다. 객석을 비운 상태에서 주파수별 잔향시간을 분석한 결과는 125Hz에서 3초, 250Hz에서 3.2초, 500, 1000에서도 3.2초를 유지하다가 2000Hz 대역으로 가면 2.6초로 떨어지고 4000Hz가 넘어가면 2.1초로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이는 저음과 중음이 풍부한 반면 고역이 날카로운(좋은 의미에서) 결과를 낳게 되고, 이를 레코딩에 담아내어 ‘비엔나 소리’라고 한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나 소리는 악단의 소리일 뿐만 아니라 주파수 새공이 강한 콘서트홀의 소리라는 의미도 되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당히 주관적인 소리로 녹음되고, 오히려 이를 표준으로 평가해버리는 오류가 나타난 것이다. 반면에 잭 레너는 연주회장의 개성을 되도록이면 배제하고 비엔나 필하모닉의 원래 소리에 충실함이 그 목적이었던 것 같다. 쉽게 말해서 ‘음악과 공간을 분리했다’는 말이 된다. 결과적으로 잭 레너의 비엔나 필하모닉 녹음은 악단 자체의 소리와 고유한 음색을 마치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듯 세부적으로 구현했고, 그 나머지 부분 공간의 표현을 오히려 오디오 시스템에게 일정 부분 위임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시스템과 같은 고급 시스템에서 그걸 충실하게 표현할 수 있으니, 필자가 흥분하는 걸 이해해 주시기 바란다.


아메리칸 사운드의 정상
오디오는 착색? 연출을 즐기는 데 당연하다? 틀린 말은 아니다. 어찌 보면 오디오라는 문화가 시작된 유럽의 주어진 조건이었을 것이다. 한국도 마찬가지고,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편 미국의 소리가 무엇이 다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그 즐거움을 일깨워 준 것이 이 시스템이었다. 일단 그 스케일이 아르다. 연출은 하는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원음을 재현해준다는 접근방식은 그 소리에 명백하게 나타나고 있다. 스피커가 울린다기보다는 그 주의의 공기가 울린다는 느낌, 이게 바로 콘서트홀의 울림이다. 윌슨 오디오와 마크 레빈슨은 미국의 오디오라 그렇고, 호주산이라는 핼크로도 마찬가지이다. 음악을 접하는 환경이 미국과 그리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잭 레너, 그리고 텔락의 레코딩은 바로 이러한 소비자의 환경을 고려한 상황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자신의 음반을 들어줄 청중의 청취환경, 그리고 오디오 기기를 디자인하는 엔지니어들이 추구하는 소리의 성격을 모두 포괄하는 소프트의 레퍼런스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필자가 오래 전에 윌슨 오디오 사장의 거실을 외국 잡지를 통해 본 적이 있다. 커다란 공간, 그리고 잘 정돈된 음향조건, 이런 방이라면 유럽식의 착색이 가미된 레코딩을 쉽게 연주하기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결국 윌슨 오디오가 원하는 이상적인 사운드가 결국 텔락과 같은 레코딩을 잘 재생할 수 있는 그것은 아니었는지? 이는 별로 틀릴 가능성이 있는 추측 같지는 않다.

필자로서는 그동안 아메리칸 사운드에 대해 얼마나 그릇된 편견을 갖고 있었는지 되돌아보게 되는 계기도 되었다. 필자는 미국에 오랫동안 있으면서도 열심히 유럽 기계들만 구해다 들었을 정도였다. 왠지 호방하지만 거칠고, 소리는 굵지만 음악의 흐름이 자연스럽지 못하고, 대개 이런 식의 불만이었는데, 소위 가장 미국적이라는 시스템, 그중에서도 최고의 시스템을 접하고 보니 이는 매우 잘못된 편견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이 시스템, 그리고 텔락/잭 레너의 레코딩을 조합해서 들어본 결과로는 ‘아메리칸 사운드의 본질은 공간과 악음의 밸런스가 출중하다는 것’이었다. 이 정도의 통찰을 가능하게 해주었다면 이 시스템은 이미 좋다 나쁘다의 단순한 평가 대상의 경지는 넘은 것이고, 관건은 개개인의 취향인 셈이다.

매달 한 번씩 ‘기가 막히는’ 시스템을 듣게 되니 오랜만에 오디오 하는 만족감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오고, 숨도 차다. 충분한 공간을 이미 확보하고 이 정도 수준의 시스템을 제대로 세팅해 놓고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애호가들이 얼마나 될까? 시스템이야 무리해서 들여 놓을 수 있는 애호가들은 좀더 많겠지만, 이 시스템이 제대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을 어떻게 마련해 주나? 일반적인 오디오 시청 환경에서도 충분히 구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은 박성수 씨가 증명한 셈이지만, 필자는 이런 수준의 오디오를 위해서라면 집을 새로 짓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해 보았다.

 

월간 오디오&홈시어터 2005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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