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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raphon : 동구권의 향토색이 짙게 배어나다
글쓴이 : 최윤구     조회 : 18936

제목 없음

Supraphon
 

동구권의 향토색이 짙게 배어나다

 


스메타나 <나의 조국>
매케라스(지휘)/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upraphon SU 3771-2 

   서구의 메이저 음반사들이 신녹음을 꺼리는 가운데 구 동유럽 공산권의 국영 레코드 회사들의 음반들이 다시 국내에 소개되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회사들에 라이센스를 준 것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던 멜로디아가 므라빈스키, 오이스트라흐, 길렐스, 리히터 같은 대표 아티스트들의 박스 세트를 내놓았고, 헝가로톤은 애니 피셔와 치프라 에디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한동안 보기 힘들었던 체코의 수프라폰 레이블이 다시 국내 시장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수입이 재개되며 국내에 들어온 음반들은 여러 모로 기존의 동구권 레이블들과 궤를 달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수프라폰이라고 하면 반사적으로 노이만-체코필, 요제프 수크와 스메타나 4중주단을 떠올릴 사람들이 대부분이겠지만 이번에 소개된 음반들의 핵심은 찰스 매케라스의 최신 녹음들이다.
    영국 음악계에 끼친 공적을 인정받아 ‘경(Sir)’의 칭호를 받은 매케라스지만 그는 뉴욕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오스트레일리아로 이주, 시드니 음악원에서 음악공부를 한 사람이다. 그 후 그는 체코로 유학, 프라하 음악원에서 공부하게 되는데, 이 때 체코필의 지휘자인 바츨라프 탈리히를 만나게 된다. 그를 통해 접한 마르티누와 야나체크의 음악 세계는 단번에 그를 사로잡게 되었고, 영국에서 지휘자로 데뷔한 그는 역시 단번에 체코 음악의 명해석자로 떠오르게 된다. 1951년 ‘카자 카바노바’의 영국 초연을 지휘했고, 공연의 압도적인 호평에 힘입어 데카에서 야나체크의 오페라와 관현악곡을 빈 필과 녹음했다.


드보르작 < 교향곡 6번 > 
< 교향시 ‘황금물레’ > 
매케라스(지휘)/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Supraphon SU 3771-2 

  지금도 동 레퍼토리에서 정전의 지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야나체크 프로젝트를 끝낸 뒤 매케라스는 세계의 오페라 극장들을 석권했고, 콘서트 지휘자로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 나갔다.
   오늘날 그는 야나체크에 못지않은 모차르트 전문 지휘자로서 텔락에서 모차르트의 오페라와 교향곡집을 녹음했으며, 필립스에서는 브렌델과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집을 진행하고 있다.
   스메타나의 ‘나의 조국’은 매케라스가 얼마나 체코 음악에 정통해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음반이다. 국민주의 음악의 정화와도 같은 이 교향시는 너무나 향토색이 짙기에 본토박이가 아니면 그 맛을 내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한국 사람이 아니고서는 아리랑의 참맛을 이끌어 낼 수 없다든가, 같은 한국 사람이더라도 전라도 사람이 아니고서는 노랫말이 전라도 방언으로 되어 있는 판소리를 제대로 부르기 어렵다는 것과 비길 수 있는 일종의 ‘명제’다. 그래서 체코 지휘자가 아니고서는 인기곡인 두 번째 곡 ‘불타바(몰다우)’를 연주할 뿐 전곡 연주는 엄두를 못 내는 것이다.
    매케라스는 체코 필을 이끌고 ‘나의 조국’을 제대로 연주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비 체코 지휘자다. 음색도 그렇지만 특히 리듬의 운용은 쿠벨릭이나 노이만, 스승인 탈리히의 그것에 견주어 전혀 손색이 없다. ‘불타바’에서 현이 묘사하는 강물의 굽이침은 경지에 오른 리듬 운용이 이루어 낸 장관 중의 장관이다.


드보르작 <현악 4중주 6번 & 7번> 
파도차 4중주단 
Supraphon 11 1455-2 

  바로 눈앞에서 강물이 넘실거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선명한 이미지는 서구의 대가들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여기에 감정이라고 해도 좋고 정서라고 해도 좋은, 그 강물이 흐르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만이 표출할 수 있는 것을 매케라스는 이끌어 내고 있는 것이다.
   곡 전체에서 대비가 뚜렷한 리듬의 운용과 빠른 템포를 택하여 국민음악파 특유의 건강한 면을 부각하고 있지만 필요할 때 충분히 현에 물기를 머금게 하고, 목관악기로 하여금 향수 어린 노래를 부르게 함으로써 유동성에 못지않은 정치함을 자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근래 보기 드문 명연으로 역대의 그 어느 명연과 견주어도 꿀릴 것이 없다.
     드보르작의 교향곡 6번과 교향시 ‘황금물레’도 수연이 아닌 명연이라는 표현을 써야만 할 것 같다. 이 연주의 가장 놀라운 점은 올해로 80세가 된 노지휘자의 지휘봉이 빚어내는 음악이 젊었을 때보다 훨씬 원기왕성하다는 점이 아니라 음악이 그처럼 활기찬데도 이 곡의 핵심인 소박함을 해치지 않고 있다는 데에 있다.
    작곡자의 이름을 국제적인 것으로 만든 ‘슬라브 춤곡’을 연상케 하는 교향곡의 3악장에서 매케라스는 실로 짜릿하게 리듬을 교차시키며, 템포가 늦춰지는 중간부에서는 목가풍의 아련한 느낌을 자아낸다.
    ‘황금물레’는 최근에 나온 래틀-베를린 필(EMI)의 연주와 좋은 비교가 된다. EMI의 빈약한 녹음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지만 래틀의 신보에는 매케라스-체코 필이 여기서 들려주는 활력이 결여된 것처럼 들린다.


드보르작 <현악 4중주 op.96 ‘아메리카’> 
브람스 <현악 4중주 op.51-1> 
스캄파 4중주단 
Supraphon SU 3380-2 

 지극히 섬세하고 유연한 래틀-베를린 필의 연주가 순수하게 관현악적인 관점에서 봤을 때는 장점이 많지만, 체코의 국민 시인 엘벤의 시집에서 소재를 취한 이 교향시에서는 당연히 매케라스-체코 필의 향토색 짙은 거칠거칠한 연주가 어울린다.
   스메타나, 야나체크 같은 위대한 선배들을 잇는 체코의 신진 4중주단인 스캄파의 음반은 브람스의 ‘현악 4중주곡 op.51-1번’과 드보르작의 ‘아메리카’를 담고 있다. 역시 초점은 ‘아메리카’일 터. 스캄파는 리듬과 음색에서 본토박이다운 실력을 뽐내지만 선배들보다 훨씬 국제적인 표준에 가까운 다이내믹이나 앙상블을 구사하는 면모를 보인다. 격렬하다고 해도 좋을 1악장의 거센 연주는 스메타나 풍의 아련한 정취를 예상했을 이들을 당황하게 할 것이다. 2악장은 이들이 선배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웅변하는 대목. 그들의 연주는 분명 노스탤지어를 자아내지만 거기에 젖어 있지는 않다. 서구와 체코 연주 전통의 중간 지대의 그 어디쯤을 탐구하고 있는 이들의 연주가 지니는 그 매력도 응당 그들의 탐사지대에서 찾아야 마땅할 것이다. 함께 수록된 브람스도 드보르작을 적극 후원했던 이 두 대가의 생전의 우정에 값하는 좋은 연주다.  
    파노차 4중주단의 드보르작 현악 4중주곡 6번, 7번은 ‘아메리카’ 말고는 들을 기회가 많지 않은 이 작곡가의 실내악 세계를 엿보는 데 최고의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완벽한 기술적 완성도를 바탕으로 적절한 수준의 다이내믹에 최고의 노래를 뽑아내는 네 대의 현이 빚어내는 앙상블은 적어도 현역 중에서는 경쟁상대를 찾기 힘들다. 이 음반을 구입한 사람이라면 이들의 나머지 드보르작 현악 4중주집을 사기 위해서 음반점으로 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음반들의 음질은 최상이다. 동구권 음반들은 음질에 관해서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수프라폰의 최신보들은 보기 좋게 거부한다. 메이저든, 혹은 음질을 앞세운 오디오파일 레이블이든 서구의 어떤 레코드사도 자신들이 녹음하는 레퍼토리와 연주홀에 정통한 수프라폰의 녹음 기술진을 당해내기 힘들 것이다. 디지털 녹음에서도 얼마든지 향토색의 표출이 가능하다는 것을 실증하는 우수한 녹음. 오디오파일에게도 안심하고, 아니 적극적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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