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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윤구 | 오디오·음반 평론가
글쓴이 : 최윤구     조회 : 25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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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청 시스템 : 에소테릭 X-03 

최윤구 | 오디오·음반 평론가

프레디 켐프의 베토벤 후기 피아노 소나타집은 일련의 슈만 녹음과 함께 그에게 오늘날과 같은 지명도를 안겨준 수연이었다. 프로코피에프로, 쇼팽으로 레퍼토리를 넓혀 가던 켐프가 다시금 베토벤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이른바 32곡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중에서 3대 피아노 소나타로 불리곤 하는 ‘월광’, ‘비창’, ‘열정’을 담은 음반으로. 신인이든 중견 연주자건 요즘에는 레퍼토리를 이렇게까지 ‘피아노 명곡집’으로 짜지 않는 것이 대세이므로 이제 막 클래식 음악에 입문한 사람들에게는 반갑기 그지없는 음반일 것이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열정’> 
 프레디 켐프(피아노)
  BIS SACD-1460 

    우선 귀에 확 들어오는 것은 피아노의 독특한 음향이다. 처음 음반을 걸고 켐프가 다시 야마하로 녹음을 했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쇼팽의 연습곡 이전까지 야마하의 후원을 받으며 리히터-굴드로 이어지는 야마하 피아니스트 라인을 잇는 대표적 피아니스트였던 만큼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내지를 보면 켐프는 쇼팽 녹음에서 사용했던 스타인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결국 더없이 맑고 또랑또랑한 그의 피아노 음색은 악기의 음색에 기대지 않고 그의 손가락이 빚어낸 고유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켐프는 야마하 피아노의 그것을 연상케 하는 예의 사운드를 스타인웨이에서 끄집어내면서 완벽한 기교를 바탕으로 한 빠른 전개와 상상력 넘치는 악구진행이라는, 그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연주를 펼쳐 보인다. 거기에 슈만에서 충분히 검증받은 시적이고 몽환적인 감수성이 가미된 느린 악장(월광과 비창의)이 가미됨으로써 그의 베토벤은 완성된다. 분명 지난 세대 거장들과 차별되는 신세대풍의 연주지만 이를테면 얼마 전 린에서 역시 하이브리드 SACD로 선보인 피자로의 연주와는 궤를 달리한다. ‘듣고 있으면 신이 나는 연주’라고 평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처럼(매우 자연스럽고 적절한 지적이요. 반응이다)피자로의 연주가 스피드에 못지않은 힘과 다이내믹에 상당 부분 의존하면서 세부보다는

 

 전체의 흐름에 승부를 걸고 있다면, 켐프는 프레이징이나 악센트 같은 세부적인 부분에 좀더 정성을 들이고 있다. 앞서 말했듯 켐프의 연주 역시 전세대의 그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감각적인 것이지만 악보의 음표 하나하나까지 염두에 두는 듯한 통찰력에서 피자로보다 우위에 있다. 피자로가 신나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무신경하게 보일 만큼 빠른 속도로 지나쳐 버리는 베토벤의 음표들을 켐프는 자기 스스로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듣는 이들에게 음미할 여유를 충분히 주고 있다. 
     ‘월광’ 3악장은 켐프의 베토벤 연주가 지니는 특성을 압축적으로 들려준다. 경쾌한 스피드, 음 하나하나가 선명하게 떠오르는 투명한 음색, 물 흐르는 듯한 매끄러운 악구 처리와 손이 발인 듯한 절묘한 페달링.
       최근 들어 메이저 마이너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녹음수준을 과시하고 있는 BIS답게 이 음반 역시 인상적인 음질을 들려준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켐프의 손과 발이 음악을 분절해서 처리하는 순간의, 그야말로 순간적인 스피드를 녹음이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다는 점. BIS 특유의 자연스런 임장감이나 깨끗이 닦은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보는 듯한 해상도는 어지간한 오디오에서도 맛볼 수 있지만 이 스피드만은 수준급의 시스템이 아니면 재현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바흐 <마태수난곡(발췌)>
 마사이 스즈키(지휘)/바흐 콜레기움 제팬
 BIS SACD-1500 

현대의 오디오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 중에 하나인 스피드를 체크해 보는데 유용한 음반이긴 하지만 이 속도감은 스튜디오에서 인공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피아니스트의 손과 발이 ‘빚어낸’ 것이라는 점을 계산에 넣지 않으면 그 테스트는 아무런 의미도 결실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미리 얘기해 두고 싶다.
  스즈끼-바흐 콜레기움 제팬의 ‘마태수난곡’은 앞으로 BIS의 SACD 발매수순을 짐작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음반이다. 비록 하이라이트 형태로 출시된 것이 아쉽긴 하지만 이 음반의 발매로 BIS의 정평 있는 녹음들이 SACD로 재출시되는 것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 스즈키-바흐 콜레기움 제팬은 기악과는 달리 몸 자체가 악기라는 특성과 노랫말의 존재 때문에 작곡가와 동향이 아니고서는, 혹은 서구인이 아니고서는 접근하기 힘들었던 성악 분야에서 동양인들이 숙명처럼 지니고 있었던 한계를 극복해냈다. 어느 서구 기자의 몰지각한, 그러나 그전까지의 상황으로 미루어 볼 때 지극히 상식적이기도 했던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지 않는 일본의 합창단이 바흐의 마태수난곡과 칸타타를 연주한다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스즈키는 이렇게 답했다.

 “바흐가 섬겼던 하나님과 내가 섬기는 하나님은 같은 분이시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외네메 예르비(지휘)/
 고텐부르크 심포니 오케스트라
  BIS SACD-1408 

   서양의 고전음악을 인류가 보편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문화유산이라고 하면서도 악보를 음향으로 재현하는 과정에 비서구인이 참여할 경우 묘한 경멸의 시선을 던지는 것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그 시선의 임자 중에 서구인뿐만 아니라 우리의 선배나 친구도 있다는 사실에 항상 슬퍼했던 필자에게 스즈키의 말은 계시처럼 다가왔다.
    스즈키의 ‘마태수난곡’의 연주가 지니는 높은 예술적 성취야말로 그의 말을 입증하는 가장 강력한 증거물이다. 뜨뜻미지근했던 발매 당시의 평가와 달리 지성과 이성이 절묘하게 중용을 이루고 있는 이 음반은 시간이 지날수록 높은 평점을 받고 있다. 게르트 튀릭의 에반젤리스트는 여전히 아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예수 역을 맡은 역전의 명장 페터 코이의 열연과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낸시 아르젠타 같은 독창진의 노래가 상대적으로 어색한 바흐 콜레기움 제팬의 독일어 딕션을 도드라지지 않게 해준다.
   가장 우수한 음질의 마태라는 평가는 이번 SACD 발매로 확고부동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아도 인상적이었던 입체적인 무대는 더 깊고, 더 넓어졌다. 이렇듯 무대가 확장되면서 음색이 레드북 CD 버전에 비해 더 유연하고 자연스러워졌기 때문에 해상도 역시 개선되었다기보다는 질적으로 향상된 것처럼 들린다.  이미 석 장짜리 기존 음반을 가지고 있던 이라도 전용 SACD 플레이어를 갖추고 있다면 반드시 들어볼 가치가 있다. 
    예르비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전집 최신보는 ‘교향곡 5번’과 ‘이탈리아 기상곡’, 교향적 발라드 ‘지방장관’을 담고 있다. 예르비의 차이코프스키는 극적인 추진력이나 드라마틱한 대비보다는 악단에서 최대한의 칸타빌레를 끌어내는 것을 우선시하는데, 그 어느 교향곡보다 화려하고 드라마틱한 피날레를 자랑하는 ‘교향곡 5번’에서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듯싶다. 

  2악장 안단테 칸타빌레와 3악장 왈츠에서 너무도 유려하고 아름다운 노래를 들려준 고텐부르크 심포니가 4악장에서도 같은 노선으로 밀어붙인 것은 분명 패착이었다. 빈필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야성이 넘치는 4악장으로 격찬을 받았던 게르기예프 역시 같은 방식을 취한 신보를 내놓았다가 전작만 못 하다는 평을 받은 뒤 끝에 나온 예르비의 연주는 3악장까지의 흐름이 무척이나 좋았기에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음질만큼은 이 시리즈의 명성을 이어나가기에 충분하다. 고텐부르크 홀의 어쿠스틱을 충분하게 살린 BIS의 녹음은 정규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쳄버 오케스트라로 착각하게 만드는데, 물리적인 실체의 왜곡이 아닌 분위기를 다듬어 그 같은 일을 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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